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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오지여행_ 영월 가재골

물보라물 2011. 12. 14. 10:20

 

오지여행_ 영월 가재골
6·25 전쟁 때도 끄떡없던… 칼 같은 산들에 둘러싸인 '육지섬'

 

 

칼 같은 산들이 얽히고설킨 사이로 비단결 같은 냇물이 맑고 잔잔하게 흐른다. 자리 잡은 형세가 영락없는 오지다. 육지 속에 틀어박힌 육지 섬 형국이다. 오죽했으면 지명도 영월이라 지었을까. 영월(寧越)은 '무사히 넘어가기를 바란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세조가 단종의 유배지로 영월을 택한 것도 아마 이런 험한 지형이 고려됐을 것이다.

영월에는 해발 500m 이상 되는 산들이 30여개나 된다. 대부분 1000m 내외다. 뾰족한 봉우리들이 에워싸고 있다. 그 영월에 가재골(可在洞)이란 곳이 있다. 가재가 많아서가 아니라 '가히 살아남을 만한 곳'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가재골은 조선 후기 사회가 혼란해지자 정감록에 심취한 평안도에 살던 박씨들이 십승지(十勝地·전쟁이나 천재〈天災〉가 일어나도 안심하고 살 수 있다는 열 군데의 땅)를 찾아 이곳에 이주하면서 생겼다. 일설에는 '가장자리 마을'이란 뜻으로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 [조선일보]영월 가재골에 사는 정영주(오른쪽)씨가 그의 집 옆으 로 난 길을 따라 걷고 있다. 가재골은 앙상한 나뭇가지 와 빛바랜 나뭇잎으로 고즈넉하다. /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ydw2801@chosun.com

가재골에 가기 위해 88번 도로를 타고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 남한강과 옥동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다다랐다. 원래 맛밭나루터가 있던 자리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주민들이 남한강을 건너던 나루터였다.

옥동천을 가로지르는 잠수교 비슷한 다리 위에 가재골이란 커다란 이정표가 나타났다.'홍수시 출입금지 구역'이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그 이정표를 따라 남한강 상류 옆으로 조그만 시멘트 도로가 외길로 나 있다. 한쪽(북쪽)은 남한강이 흐르는 천 길 낭떠러지고, 다른 한쪽(남쪽)은 깎아지른 산사면이다. 한눈에 봐도 길을 닦은 지 몇 년 되지 않는다. 도저히 길이 날 수 없는 길의 사면(斜面)을 깎아 외길로 만들었다. 차량이 겨우 한 대 지나갈 수 있는 길이다.

1㎞ 정도 올라가자 천혜의 계곡이 나온다. 남한강과 합류하는 계곡 끝 지점이 마을입구인 셈이다. 입구를 제외하곤 삼면이 급사면으로 둘러싸여 배나 차량의 접근이 불가능해 보였다. 계곡을 들여다보니 아찔할 정도로 깊다. 계곡을 따라서 1㎞ 남짓 올랐다. 이곳에도 찾는 사람이 있는지 식당을 겸한 펜션이 나온다. 주인 정규태(丁奎台·58)씨는 이곳을 떠나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이곳에 자리를 잡아 살았으니 한 200년이 넘었을 거요. 아버지는 여기 살면서 일제강점기 노무자로 끌려가는 걸 피했다고 들었어요. 이곳이 바로 피란처였던 거지. 6·25 전쟁 때에도 피란 안 가고 그대로 머물러 있었죠. 별 피해도 없었어요. 사실 전쟁이 난 줄도 모를 정도였죠."

그럴 만했다. 삼면이 급사면인 데다 마을 입구는 천길 계곡이 흘러 남한강과 합수(合水)되는데, 누가 이런 곳을 찾기나 하겠나 싶었다. 집 주변엔 토종닭들이 무리지어 다니며 "꼬꼬댁~ 꼬꼬~" 소리를 냈다.

"시멘트 도로가 난 것도 20년이 채 안 돼요. 그전엔 영월읍내와 단양 영춘장에 가려면 꼭두새벽에 일어나야 했죠. 집 앞 마대산 자락을 넘어 영춘장에 가는 데 왕복 40리, 영월읍내 장에 가는데 왕복 80리가 걸리니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내다 팔 콩과 약초 등을 지고 나갔어요. 시장에서 먹을 쌀을 한 가마니 지고 돌아오면 밤 12시가 훌쩍 넘었죠. 그러니 올 때 갈 때 초롱불은 필수품이었어요. 이젠 자식들 다 커서 나가고 우리 부부만 이곳에 남았으니…. 다 옛날 얘기죠, 뭐."

세월의 무상함은 오지에서 더욱 절절히 느낄 수 있다. 호롱불은 랜턴과 가정용 전기로 대체되고, 장날 짐을 지고 다니던 두메산골 소로인 토끼길은 등산로로 바뀌었다. 마을 앞 시멘트 길이 닦이면서 하루 80리길 걷던 일을 차로 한나절 만에 해결하게 됐다. 아이들이 맛밭나루터 맞은편 왕복 20리길을 걸어 다니던 옥동초등학교는 없어진 지 오래다.

마을의 드문드문 있는 집을 따라 전봇대들이 연결돼 있다. 전봇대를 따라 계속 올라갔다. 계곡은 어느덧 작아지더니 사람과 같이 어울려 사는 소박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찾아가는 길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제천에서 나와 38번 국도를 이용해 영월·태백 방향으로 가면 된다. 이어 영월읍에서 88번 도로로 바꿔 탄 뒤 남한강과 옥동천이 합수되는 부근에 있는 '나그네쉼터'에서 가재골로 방향을 틀어 외길로 올라가면 된다.

출처 : 우리문화탐사회
글쓴이 : 선운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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